자정이 가까워져가는 인천공항 탑승구, 초대형 2층 비행기 에미레이트 A380에 몸을 실었다. 기내에 들어서면서도 이게 현실인가 눈을 꿈뻑였다. 아랍에미레이트(UAE) 두바이를 거쳐,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까지. 여행지로도 생각해본 적 없던 미지의 나라, 뉴스에서만 보고 듣던 낯선 곳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올해 초부터 블룸에이아이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랜기간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 국내 플랫폼사와 중동 시장을 겨냥한 앱을 함께 개발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고객 커뮤니케이션 솔루션에 특화된 블룸은 고객응대(CS) 서비스와 CRM 메시징 서비스 개발을 맡았다. 사실 이전에도 몇 차례 회사의 해외 진출 이야기가 오간 적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실행까지 결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시작은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 시장일줄 알았건만.
장마가 막 시작되려던 7월 중순, 현지 답사를 위해 모인 세 명의 출장 트리오는 페르시아만 상공을 가로질러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섭씨 40도의 뜨거운 대지 위로 내려앉았다.
하늘길에 올랐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끝이 보이지 않는 두바이 국제공항 수하물 수취 구역.
새벽 4시가 조금 못 된 시간, 두바이 국제공항(DXB)에 도착했다. 분명 자정 넘어 출발해 9시간을 넘게 날아왔는데도 해가 뜨지 않았다니, 시간을 선물로 벌어둔 기분이었다. 거대한 공항은 눈이 부실 정도로 황금빛으로 가득했고, 한밤중이었음에도 환승을 위해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국적인 얼굴들을 마주하니 그제서야 ‘결국 오고야 말았구나!’ 실감이 났다.
긴장했던 입국 심사는 싱거울 만큼 깔끔했다. 흰 토브(Thobe)를 입고 구트라(Ghutra, 남성들이 머리에 쓰는 흰색 천)를 쓴 현지 직원은 여권을 확인한 뒤 두바이를 처음 방문하냐는 질문만 했다. 어색한 웃음과 함께 “예스”라고 답하자, 그는 잠시 후 여권을 돌려주며 "웰컴 투 두바이"라고 낮게 읊조려 인사해주었다. 겉보기엔 차가워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피곤한 이방인을 반겨주고 있었다.
🕌🐪 [중동 상식 한 조각] 아랍 남성들의 머리장식, 정확한 이름은?
셰마그를 착용한 남성의 모습
사우디 남성들이 머리에 쓰는 흰색 천은 ‘구트라(Ghutra)’, 흰색과 붉은색 체크무늬 천은 ‘셰마그(Shemagh)’라 부른다. 이 천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머리 위에 얹는 검은색 고리는 ‘아갈(Igal)’이다. 일상적으로 착용하며, 실내에 머물 때는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날씨가 무서워
소문은 익히 들었다. 중동의 태양은 차원이 다르다는 걸. 하지만 습도가 높은 한국의 여름 무더위도 만만치 않기에 조금은 얕봤던 것 같다.
오후 1시에 섭씨 42도를 기록한 두바이의 여름 날씨.
두바이에서의 첫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밖으로 나선 오후 1시. 호텔 로비 문이 열리자마자 뜨거운 공기가 훅- 끼쳐오며 피부를 휘감았다. 날씨 어플을 확인하니 앞자리가 ‘4’였다. 화씨가 아닌 섭씨 42도. 뛰놀기 좋아했던 10살 이후로는 한 번도 흘려본 적 없던 인중 땀이 쏟아졌다.
해외여행을 하면 으레 걸린다는 ‘차원이 달라’ 병. 눈부신 열기와 나눈 강렬한 첫 인사와 함께 시작됐다. “중동 더위는 차원이 달라!”. 앞으로 10일간 이 더위와 싸워야 한다.
CEO의 자동차
돌이켜보면 낯선 땅에서의 출장이 비교적 수월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시작이 상상 이상으로 좋았기 때문이다.
두바이 도착 첫 날, 중동과 북아프리카(MENA) 전역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BPO 기업과의 첫 미팅을 앞두고 있었다. 두바이를 처음 방문하는 우리를 위해 담당자는 차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차량을 기다리던 출장 트리오 앞에 나타난 건 택시나 평범한 밴이 아닌, 묵직한 가솔린 소리를 내며 서 있는 사각형의 독일제 외제차(편의상 G로 부르겠다)였다. 전용 기사가 운전하는 외제차를 보내준 기업이라니. 임무가 막중했다.
G를 타고 15분가량을 달려 도착한 곳은 거대한 오피스 단지로 이루어진 ‘두바이 커머시티(Dubai Commercity)’였다. 커머시티는 ‘프리존(FreeZone)’으로 불리며 자유무역지대로 구분되는 곳으로, 중동 최초의 디지털 커머스 특화 구역이다. 최첨단 인프라와 글로벌 IT 기업들이 집결해 있는 두바이 디지털 경제의 중심지다. 이곳에서 만난 30대 후반의 젊은 CEO Ahmed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번 프로젝트 협력에 대한 의견은 물론, UAE와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시장 전반의 상황과 정책, 규제, 이슈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미팅이 진행되는 내내 깊은 인상을 받은 건 비즈니스에 대한 그의 진지함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를 맞이하고 대화하는 태도에서부터 중동 특유의 깊은 환대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젊은 CEO의 손님맞이 하이라이트는 미팅 이 끝난 후 찾아왔다.
3시간을 훌쩍 넘긴 대화를 기념사진 촬영으로 마무리 한 뒤, 그가 안내한 곳은 우리를 태우고 왔던 외제차 ‘G’ 앞이었다. G는…다름아닌 CEO의 자가용이었던 것이다.
“미팅이 길어져 시간이 이렇게 됐으니 저녁을 함께하도록 하죠. 두바이몰에 괜찮은 곳을 알아죠. 거기 부르즈 할리파도 있으니까요. 가는 길에 도시 구경도 시켜드릴게요.”
운전석에 기사님이 앉으셨냐고? 아니다. 직접 운전대를 잡은 호탕한 CEO Ahmed와, 한국에 관심이 많은 임원 Nima, 어리둥절 출장 트리오의 영광스럽고도 묘한 동행이었다.
호텔까지 마중을 온 CEO의 자동차. G는 굉장했다.끝없이 이어지는 두바이 도심의 마천루. 빼곡한 오피스 빌딩들은 입주가 모두 끝났다고 한다.
모자이크의 도시
두바이 최대 쇼핑몰로 향하는 길에 마주한 도시 풍경은 ‘크다’ 혹은 ‘화려하다’는 단어를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을 자랑하는 마천루, 태양이 뿜어내는 열기와 빛을 비웃는듯한 통유리 빌딩들까지. 산유국의 재력과 전 세계 건축가들의 상상력이 결합한 거대한 미래 도시가 거기 있었다.
"이 더운 나라에서 통유리 건물이라니, 전기세는 대체 얼마나 나올까?" 한국인 특유의 지극히 현실적인 궁금증이 튀어나와 스스로도 우스웠다. 동시에 세계 각국의 기업과, 인재들과, 새로운 비즈니스가 모여들고 있는 이 도시에 우리도 사무실 하나쯤 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겼다.
이어진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잊지 못할 유쾌한 문화 충격도 있었다. 첫 만남부터 훌륭한 레스토랑에서 대접을 받는 것이 미안해진 우리가 한마디를 슬쩍 건넸다.
"오늘 저녁은 저희가 내거나 밥값을 스플릿(더치페이)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자 웃고 있던 Ahmed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여기선 손님을 대접하려는 호스트 앞에서 절대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것처럼 들려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그는 특유의 호탕한 미소를 되찾으며 중동 특유의 손님맞이 예법에 대해 진심 어린 조언을 덧붙여주었다. 손님을 끝까지 책임지고 정성을 다하는 그들의 환대가 단순한 친절을 넘어 깊은 자부심에서 나온다는 것을 체감했다.
Ahmed와의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부르즈 할리파 인근에서 마주한 두바이의 밤 풍경은 그야말로 거대한 인종과 문화의 집결지였다. 전통 의상인 아바야와 토브를 입은 이들 사이로 유럽, 인도, 파키스탄, 동남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이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각자 자신만의 옷차림과 언어를 유지한 채 한 공간을 어우러내고 있는 모습에서 국제도시 특유의 생경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이 다채로운 사람들의 물결을 마주하고서야, UAE 전체 인구의 90% 가까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생생한 실체로 피부에 와닿았다.
서로 다른 문화와 국적이 각자의 색깔을 선명히 빛내며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완성해 가는 ‘모자이크(Mosaic)’, 날씨만큼이나 뜨겁고 역동적인 두바이의 진짜 얼굴이었다.
이런 손님맞이가 또 있을까? Ahmed는 직접 두바이몰과 부르즈할리파를 안내해 줬다.손수 음식을 나누어준 Ahmed. 육즙 가득한 양고기 요리였다. 첫 날부터 우리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부르즈할리파 앞에서 야경과 함께 즐기는 화려한 분수 쇼. 모두가 이 순간을 기다린다.
🕌🐪[중동 상식 한 조각] 두바이는 나라 이름이 아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아부다비, 두바이 등 7개의 토후국(Emirates)이 모여 이룬 연방 국가다. 특히 두바이는 UAE 전체 인구 약 1,000만 명 중 외국인 비율이 약 88~90%에 달할 정도로 독보적인 다국적·다문화 도시다. 자국민(에미라티)보다 글로벌 인재와 이주 노동자가 훨씬 많아,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비즈니스 허브로 꼽힌다.
태양 아래 컨테이너
둘째 날은 UAE 오일머니의 중심지, 수도 아부다비(Abu Dhabi)로 향했다. 두바이에서 아부다비까지는 차로 약 1시간 남짓.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도로를 달리는 맛이 있었지만, 태양이 어찌나 강렬한지 선글라스 없이는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다. 차 안을 채운 진한 중동 특유의 향기와 차멀미가 더해져 컨디션이 조금씩 휘청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아부다비는 화려함과 역동성이 뿜어져 나오던 두바이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푸른 바다에 둘러싸인 넓은 사막 위 단정하고 세련된 도시였다.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답게 이슬람 건축의 웅장함을 보여주는 모스크와 궁전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부다비에서의 첫 미팅은 인공섬이자 휴양지로 유명한 ‘야스 아일랜드(Yas Island)’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우버가 우리를 내려준 곳은 뜻밖에도 거대한 F1 레이싱 경기장(Yas Marina Circuit) 부지 안이었다.
차 문이 열리자마자 7월 한여름 사막의 열기가 훅 끼쳐왔다. 거대한 선탠기계가 되어버린 태양은 비명을 지르며 피부를 찌릿하게 구워냈고, 그 맹렬한 기세는 마치 사막고양이가 솟구치는 열기 속에서 사납게 하악질을 해대는 듯했다.
“여기 맞아요? 잘못 온 거 아니예요? 아무도 없는데…”
아무도 없는 공터를 서성이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선글라스를 낀 키 큰 남자가 다가왔다. 그가 바로 미팅 상대인 영국인 CEO Noah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그를 따라간 곳은 경기장 한편에 위치한 컨테이너 건물이었다. 건물 옆 계단을 따라 올라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꽤 널찍한 사무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깥 날씨를 느끼지 못할 만큼 더위를 완벽하게 차단한 쾌적한 실내에는 업무 공간과 손님맞이용 공간이 잘 갖춰져 있었다. 이곳은 스포츠 마케팅과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알짜배기 회사였다.
스포츠 마케팅 회사가 경기장 한가운데, 그것도 컨테이너에 들어서 있는 건 솔직히 생소했다. 하지만 창밖으로 서킷과 요즘 핫하다는 ‘파델(Padel)’ 코트가 펼쳐진 풍경을 보니 금세 납득이 갔다. 비시즌이라 지금은 한산해 보여도, 결국 현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을 가장 가까이서 지키고 있는 셈이었다. 겉치레보다는 비즈니스의 실용성과 본질을 제대로 챙긴, 실속 있는 입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Noah는 "UAE의 금융과 행정 중심지인 아부다비에 거점을 두는 것이 정부 과제나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며 중동 비즈니스 지형에 대한 현실적인 팁을 건넸다.
미팅이 끝난 뒤에도 그는 뙤약볕 아래 우리가 탈 우버가 올 때까지 직접 따라 나와 배웅했다. 오피스의 형태보다 비즈니스 본질에 집중하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편견을 깨는 것은 언제나 삶의 현장으로의 발걸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뜨겁게 달궈진 파델 코트와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컨테이너. 사진으로 열기가 전해지지 않아 아쉽다.Noah와 출장 트리오의 대장 알비.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F1경기장이다.고층 오피스에서 바라본 눈이 시린 아부다비 풍경. 개발이 한창이다.
25개의 방언
두 번째 미팅 장소는 아부다비 시내와 너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피스 빌딩의 고층부였다. 이곳에서 만난 스타트업은 아랍어 특화 음성 AI를 개발하는 테크 기업이었다. 중동 시장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만남이었다.
그들은 표준아랍어(MSA)뿐만 아니라,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25개가 넘는 복잡한 아랍어 방언(Dialect)을 인식하고 처리하는 AI 솔루션을 보여주었다. 국가와 지역마다 방언 격차가 커서 실제 커뮤니케이션에 애를 먹는 중동 사용자들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정확히 파악해 기술로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CS와 CRM 솔루션을 담당하는 블룸에게는 현지 기술 생태계의 깊이를 체감할 수 있는 값진 미팅이었다.
미팅을 마친 후 진행된 오피스 투어에서 뜻밖의 소소한 감동을 만났다. 사내 휴게실에 놓인 요거트 아이스크림 기계에서 직원이 직접 컵에 아이스크림을 예쁘게 담아 우리 손에 쥐여준 것이다. 무더위에 지쳐있던 우리를 배려한 세심함에 감사함이 밀려오는 동시에, '우리는 사무실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이만큼 진심이었나?' 하는 자조 섞인 반성도 스쳤다. 현지 기업들의 손님 맞이(환대) 문화는 장소를 불문하고 한결같이 따뜻했다.
🕌🐪[중동 상식 한 조각] 아랍어 방언이 25개가 넘는다고?
아랍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은 하나의 언어를 공유하는 것 같지만, 실생활에서 쓰는 방언(Ammiyya)은 무려 25개 이상으로 나누어진다. 공식적으로 ‘몇 개’라고 정해진 것은 없으며 그 차이는 단순히 사투리 수준을 넘어, 다른 나라 사람끼리 각자의 방언으로만 말하면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다. 공식적인 문서나 소통은 공통 표준어인 MSA로 해결할 수 있지만, 현지 고객과의 접점을 만드는 CS(고객 서비스)나 마케팅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친근함과 정확성을 전달하려면 해당 국가의 일상 표현과 방언 특성을 반드시 고려해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빛과 경외의 순간
공식 일정을 끝마친 뒤, 아부다비에 온 김에 현지 문화의 정수를 눈으로 확인해 보기로 했다.
먼저 찾은 곳은 외교 리셉션과 주요 정상회의가 열리는 국빈 전용 공간이자 대통령궁인 ‘카사르 알 와탄(Qasr Al Watan)’이었다. 웅장한 황금빛 대리석과 화려한 조명도 압도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거대한 공간이 삼켜버린 듯한 방음 시스템이었다. 넓고 텅 빈 실내인데도 목소리가 울리지 않고 신기할 만큼 조용해, 귀빈들을 압도하는 통치 권력의 무언의 무게감이 전해졌다.
해가 질 무렵에는 아부다비의 하이라이트이자 하얗고 거대한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Sheikh Zayed Grand Mosque)’에 다다랐다. 나름 복장을 정돈하고 갔지만, 살이 살짝 비치는 옷조차 허용되지 않아 지하 쇼핑몰에서 부랴부랴 아바야(Abaya)와 스카프를 구매해 몸과 머리카락을 가렸다. 아바야는 중동 여성들이 옷 위에 덮어 입는 기다란 로브 형태의 전통 의상인데, 남성들의 흰 로브인 '토브'와 달리 주로 검은색이나 단정한 무채색이 많다.
"이 더운 날씨에 온몸을 칭칭 감싸다니…" 싶었지만, 스카프를 둘러쓴 지 단 10분 만에 깨달았다. 이건 종교적 규율이기 전에 살기 위한 생존의 방식이었다. 햇빛이 너무 강렬해 피부를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순간 타들어 가는 통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거친 사막 환경 속에서 인류가 찾아낸 삶의 지혜가 바로 이 옷차림이었던 셈이다.
모스크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그 경건함에 마음이 턱 막혔다. 온통 하얀 대리석이 깔린 넓은 광장 뒤로 붉은 석양이 넘어갈 때, 둥근 돔 위로 지는 노을은 마치 현실이 아닌 '아라비안나이트'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초현실적이었다.
문득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경복궁을 비롯한 유적이나 전통 건축물을 처음 마주할 때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건축이 아기자기하면서도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한옥 특유의 멋을 자랑한다면, 이곳은 압도적인 규모와 화려함으로 낯선 이국적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기도 공간을 밝히는 초대형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그 안을 채운 웅장한 정적까지, 촉박한 일정 속에서도 짬을 내어 들르길 방문하기 잘했다는 확신이 들 만큼 아름답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곳이었다.
카사르 알 와탄 대통령궁으로 가는 길.카사르 알 와탄 대통령궁의 내부. 화려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 광장에서 바라본 석양.아바야를 입고 스카프를 두른 출장 트리오의 막내 오유.웅장함 속의 경건한 정적.그림처럼 아름다웠던 정원.
🕌🐪[중동 상식 한 조각] 모스크에서는 '브이(V)'나 '따봉' 금지? 신성한 모스크 내부에서는 엄지를 들거나 손가락 브이(V)를 만드는 등의 촬영 포즈가 엄격히 제한된다. 특정 손짓이 우상숭배나 불경한 의미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를 방문할 때는 두 손을 정갈하게 모으거나 차렷 자세로 경건하게 기념사진을 남기는 것이 현지 문화에 대한 예의다.
에필로그: 땀방울 끝에서 만난 진짜 중동
두바이에서의 마지막 날,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인공섬 팜 주메이라에서 피부가 '치지직'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듯한 살인적인 습도와 폭염을 마지막으로 일정을 마쳤다. 실내로 도망치듯 들어와 먹었던 아이스크림의 단맛은 평생 잊지 못할 생존의 맛이었다.
우리는 흔히 중동을 '기름으로 부를 쌓은, 아득히 멀고 폐쇄적인 나라'만으로 단정 짓곤 한다. 하지만 막상 겪어본 그곳은 정이 넘치는 젊은 리더들이 뛰놀고, 타국에서 온 수많은 근로자가 땀 흘리며, 방문객에게 한없이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는 매력적인 기회의 땅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수하물을 챙겨 급히 공항으로 달렸다. 이제 두바이의 뜨겁고 습한 공기를 뒤로하고, 한층 더 강렬한 건조함이 기다리고 있다는 두 번째 목적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시간이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던 리야드 공항의 하늘. 숨이 턱 막히는 뜨거운 사막 바람 속에서, 두 번째 진짜 중동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