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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중동 #4] 동트는 아라비아의 뜨거운 안녕 (에필로그)

블룸에이아이의 중동 시장 진출 프로젝트 마지막 이야기! 사우디에 부는 변화와 당당한 여성 리더십, '아라비안나이트'의 정수 디리야 유적지 야경, 그리고 '인샬라(Inshallah)' 문화까지. 10일간의 중동 출장에서 발견한 새로운 세계와 비전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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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B
Sep 04, 2026
[어쩌다 중동 #4]  동트는 아라비아의 뜨거운 안녕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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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밑의 새 바람아라비안 나이트인샬라(Inshallah)에필로그 : 새로운 세계로

그늘 밑의 새 바람

어느덧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월요일 아침, 이번 출장의 가장 중요한 일정 중 하나인 사우디 대표 기업 'S사'와의 미팅을 위해 다시 리야드로 향했다.

알코바르를 벗어나 또다시 펼쳐진 끝없는 지평선. 4시간 동안 차창 밖으로 사막을 가로지르며 지나온 날들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섭씨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던 두바이의 첫 열기부터, 모래 구덩이에 바퀴가 파묻혀 당황했던 아찔한 순간, 그리고 지나치지 않고 우리를 구해준 고마운 인연까지.

낯선 미지의 땅이라 겁먹었던 중동은 어느새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하고 유쾌한 추억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뜨거운 기억들을 정리하며 도착한 S사 본사는 내부를 순환하는 버스가 따로 운행될 정도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현지를 대표하는 대기업답게 방문 절차 역시 엄격했다. 사전 신분증 제출은 기본이고 현지 휴대폰 번호를 소지해야 입장 코드를 받을 수 있었다. 게이트를 나갈 때도 ID를 찍어야 나갈 수 있을 만큼 철저한 보안 아래 보수적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비즈니스 미팅에 대한 열기도 남달랐다. 우리 출장 트리오를 비롯한 한국 측 참석 인원은 총 5명이었기에 S사에서는 유관부서 2~3명 정도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세일즈, 데이터, 인프라, 사업 파트 등 현장 리더 8명이 우르르 줄지어 들어왔다. 우리가 준비한 현지 고객 응대 서비스 개발 건에 대해 기대 이상의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이다. 이들은 대기업 특유의 깐깐한 기준으로 우리 기술과 비즈니스를 검증하면서도, 눈을 반짝이며 날카로운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특히 나를 가장 깊게 매료시킨 건 이번 미팅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세일즈 매니저였다. 엄청난 아우라와 당당한 포스를 풍기는 여성 리더였는데, '중동 여성의 사회 진출은 아직 제한적일 것'이라던 고루한 생각이 무색해졌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파격적인 사회 개혁이 만든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사실 이번 출장 내내 우리가 만난 현지 기업들 대부분에는 유능한 여성 직원들이 빠짐없이 함께했다. 미팅 테이블에 당당히 앉아 현지의 시장 상황과 사업 전략을 거침없이 설명하고, 부서를 진두지휘하며 의사결정을 내리는 리더의 자리에 훌륭히 올라 있었다. 스카프 뒤로 펼쳐지는 그녀들의 전문성과 자신감은 출장 기간 내내 매번 새로웠고, 신선한 동기부여가 됐다.

퇴근 시간,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수많은 직원들 속에서도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여성 인재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 사우디는 그 어떤 나라보다 거침없이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해질 무렵 도심 풍경
리야드의 해질 무렵 도심 풍경

🕌🐪 [중동 상식 한 조각] 사우디 여성의 사회진출, 정말 늘었을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의 운전이 금지되어 있었고, 여성의 복장과 행동을 감시하는 '종교경찰(무타와)'이 거리마다 존재했다. 하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MBS)가 추진하는 국가 개혁안 '비전 2030(Vision 2030)' 이후 사우디 여성들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2018년 여성 운전 전격 허용을 시작으로 종교경찰의 권한이 박탈되었고, 여성의 홀로 해외여행 및 사회 진출 장벽이 대폭 낮아졌다.

실제로 과거 10~20%대에 불과했던 사우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목표치였던 30%를 조기에 달성하며 최근 35~40% 수준까지 급증했다. 오늘날 사우디에서는 비즈니스 실무 현장 전반에서 성과를 내는 여성 전문가와 리더들을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아라비안 나이트

미팅이 끝난 저녁, 짬을 내어 리야드 서북쪽으로 20~30분 거리에 위치한 디리야(Diriya) 유적지로 향했다. 이곳은 리야드 이전, 사우드 가문의 주요 활동 지역이자 사우디 왕조와 국가의 정체성이 시작된 상징적인 '뿌리' 같은 곳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사우디아라비아(제3사우디국)는 1932년에 공식 출범해 현대 역사는 비교적 짧다. 하지만 그 뿌리를 올라가면, 1744년 이곳 디리야에서 이슬람 개혁가 알와하브와 손잡고 '제1사우디국'을 세운 ‘사우드 가문’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후 사우디는 오스만 제국의 침공과 세력 다툼 속에서 나라가 두 번이나 무너지고 정복당하는 비운을 겪었지만, 끈질기게 땅을 되찾기를 반복하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써 내려왔다.

사우디라는 국가의 정체성이 바로 이 디리야라는 작은 사막 오아시스 도시에서 싹텄기에, 이곳은 현지인들에게 단순한 유적지 그 이상의 자부심이다.

사우디 정부가 최고급 관광지이자 역사지구로 조성 중인 디리야는 현재도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한창이었다. 입구 쪽에는 고급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었고, 왕궁 유적지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는 정원처럼 잘 조성되어 있어 발길 닿는 모든 곳이 포토스팟이었다.

또 야경 명소답게 진흙과 벽돌로 만들어진 살와 궁전의 성벽은 조명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조명이 고풍스러운 진흙 벽을 비추는 밤길을 걷다 보니, 마치 신비로운 '아라비안나이트'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듯 이국적인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유적지로 올라가기 전 마련된 작은 역사 박물관은 응접실처럼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생수 제공과 화장실 이용까지 쾌적했다. 박물관과 유적지 내 시원하게 마련된 실내 공간에서는 칼, 총 등 옛 유물과 유목민들이 입었던 의상, 말 안장 같은 구, 그리고 사우디 왕조의 연혁을 세세히 둘러볼 수 있었다.

유적지를 둘러보는 내내 사우디 특유의 문화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사우디의 모든 대형 쇼핑몰과 관광지 건물에서는 하나같이 근사한 향기가 나는데, 일종의 '향기 마케팅'인 듯했다. 진하면서도 은은하고, 달콤하면서도 상쾌한 이 아라비아의 이국적인 향기는 파묻히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한층 인상 깊었던 건 복원된 진흙 벽면에 빔을 쏘아 보여주는 디지털 아트였다. 치열했던 사막의 삶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다큐멘터리 형태로 상영하고 있었는데, 고대 유적과 현대 기술이 어우러진 연출에서 이들의 거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국가의 부가 역사적 복원에 투입되었을 때 만들어낼 수 있는 압도적인 규모와 완성도를 눈으로 확인하며, 낯선 공간이 주는 상상의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디리야 유적 살와 궁전으로 가는 입구
사우디 살와 궁전의 성벽 위에서 보이는 디리야 유적의 야경
성벽 위에서 보이는 디리야 유적의 멋진 야경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를 보여주는 디지털 아트 다큐멘터리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를 보여주는 디지털 아트 다큐멘터리

인샬라(Inshallah)

“생각보다 다 잘 풀리는데?”

중동에서의 비즈니스는 생각보다 쉬워 보였다. 만나는 업체마다 하나같이 호의적이었고, 사업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현지 기업 A사를 방문했을 때, 미팅 내내 민트 티와 사우디 커피를 대접하며 선물 꾸러미까지 챙겨주던 이가 알고 보니 회사의 CEO였을 정도다. 가는 곳마다 쏟아지는 극진한 환대와 긍정적인 기류 속에서, '중동 사업의 문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착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달콤한 친절함 뒤에 숨은 냉정한 현장 감각을 일깨워준 만남이 있었다. 귀국을 앞두고 방문한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GBC(글로벌비즈니스센터) 소장님과의 면담 자리였다.

소장님은 현지에서 자주 쓰이는 "인샬라(Inshallah, 신의 뜻대로)"나 "다 가능하다"는 호언장담을 확답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며 뼈있는 조언을 건네셨다. 호의적인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현지 문화 특유의 여유로운 속도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겉으로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다가도 실제 일처리는 기약 없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습관처럼 덧붙이는 '인샬라' 속에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느긋한 낙관이나, 안 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유연한 회피가 숨어있었던 셈이다.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형성된 이들의 느긋함과 관계 중심의 문화가, 속도전을 중시하는 한국 방식과는 사뭇 다른 지점이었다.

실리 앞에서는 냉정해지는 사업가의 얼굴을 가졌을지라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그들의 호기심과 누군가를 도우려는 진심만큼은 분명했다. 누군가의 호의로 시작된 작은 인연이 또 다른 만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듯, 사우디에서의 미팅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에필로그 : 새로운 세계로

사우디 리야드에서 알코바르로 가는 길에서 볼 수 있는 사막 풍경
광활한 하늘과 땅이 맞닿은 뜨거운 세계, 그 아래의 작은 우리

모자이크의 도시 두바이부터 아부다비의 경건한 그랜드 모스크, 그리고 리야드와 알코바르를 가로지른 사막의 긴 여정까지.

처음 출장길에 오를 때만 해도 머릿속에는 뉴스나 미디어에서 접했던 낯설고 보수적인, 혹은 멀게만 느껴지던 중동의 단편적인 이미지들뿐이었다. "누가 한여름 사막으로 출장을 가냐"며 얼떨떨하게 시작했던 여행이었지만, 직접 온몸으로 부딪히며 마주한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었다.

섭씨 40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도 손님에게 차 한 잔을 건네던 진심 어린 환대, 방언의 벽을 넘으려는 첨단 테크 생태계의 깊이, 그리고 사막 구덩이에 빠진 이방인을 망설임 없이 구하러 뛰어든 이의 호쾌한 엄지척까지. 우리가 현장에서 마주친 모든 순간은 '미지의 땅'에 대한 편견과 경계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짧은 일정이었기에 그들이 가진 수천 년의 역사와 복잡한 삶의 결을 온전히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거대한 대지 위에는 새로운 기회가 생동하고 있으며 그곳의 사람들 역시 우리와 똑같이 하루를 치열하고 소중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이라는 점이다.

인천공항에 내려 차창 너머로 마주한 한국의 시원한 밤바람 속에서 비로소 이 긴 여정의 완결을 실감했다.

이번 출장은 단순히 지정된 업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출장길을 넘어, 블룸에이아이가 앞으로 세계라는 더 넓은 무대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채워준 소중한 전환점이었다. 사막의 모래밭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이제 전 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첫 신호탄이 됐다.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한 단계 넓혀준 뜨거웠던 중동의 태양 아래서, 우리는 이미 다음 도전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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